건축은 어떠한 구조물을 목적에 따라 설계해 여러 재료를 가지고 쌓아 만드는 일을 말한다.
정의만 보아도 어떠한 목적을 갖고 단계에 따라 하나둘 해결해 나가며 목표에 도달하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Text 서윤영 작가
청사진을 그리는 일
설계란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살펴볼 때 청사진을 그려본다고 하지 않던가.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건축도면도 캐드(CAD)로 그리고 현장에서는 전자도면도 쓰는 모양이지만, 내가 설계사무소에 다닐 때만 해도 설계도면을 납품할 때면 직접 청사진(Blue Print)를 구워 보냈다. 갓 구운 청사진은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와 함께 색깔도 그야말로 짙은 청색이고 종이도 손이 베일 정도가 빳빳한 날이 서 있다. 그런데 실제로 집을 짓기 위해 청사진을 현장에서 여러 번 들추어보다 도면이 점차 빛이 바래기 시작한다. 오래된 흑백사진이 갈색으로 빛이 바래듯이, 청사진도 결국 사진의 일종이기 때문에 짙푸른 청색이 흐릿하게 변하고, 날 선 도면도 나달나달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청사진이 너덜너덜 흐릿해질 무렵 비로소 현장에서는 집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머릿속에 각인되곤 한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는가 하면 초등학생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집 전화번호까지 기억이 날 정도다. 우리는 이 잔잔하면서 오래가는 기억력을 이용해서 미래를 꾸려 나가야 한다. 이 말의 뜻은 어떤 미래를 향해 갈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신중히 고민하고 분명하게 설정한 뒤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린 미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인생의 건축가이기에 색이 바래지고 사진 귀퉁이가 모두 닳아질 만큼 자꾸만 청사진을 들여다보는 건축가처럼 인생 설계도를 보고 수정하고, 설계도에 따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주관식
그러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그렇듯 쉽지가 않다. 하루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미래에 엄청난 인물이 되어 있을 것 같다가도, 또 다음날엔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아 막막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들 때는 혹시 먼 미래에 대한 설계를 대충 스케치만 해놓은 건 아니었나 되돌아보자. 인생은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사람마다 문제 풀이와 답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적당한 주관식 답을 찾는 일은 오롯이 혼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정답을 빨리 찾아내고 싶다면 우선 나만의 설계도면을 그려야 한다. 맨땅에 냅다 벽돌을 쌓을 수 없으니 집을 짓기 전 설계도면을 그리는 것처럼 나의 미래를 짓기 전 인생 설계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세상엔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우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주워듣기만 해도 내가 초라해 보이고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엄청난 기업의 대표나 대단히 남을 많이 도운 봉사자들, 말도 안 되게 똑똑한 사람이 많지만 그들의 멋진 업적만 보고 선망하기는 이르다. 나와 저들은 다른 삶을 살았고, 취미도 다르고, 가진 능력도 다를 테니 말이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기에 다른 이의 성공한 인생 설계도를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맞춤형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공들여 그린 설계도는 우리의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이자, 삶을 안내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공들여 그린 설계도는 우리의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이자, 삶을 안내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내 손으로 만드는 미래
나만의 인생 설계도를 그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스스로를 탐구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고 있어야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나에 대해 충분히 파악했다면 설계도를 그려볼 차례다. 원하는 미래를 설정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1~3년 내로 이뤄야 하는 단기 목표와 5~10년 내로 달성해야 할 장기 목표를 구분해 정리하자. 이제 설정한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세부 행동 계획을 수립하면 그 뒤에는 어려울 것 없다. 정리한 목표들은 설계도일 뿐 이제 끝없는 계단을 오르듯 하나씩 차분히 해결해 나가면 된다. 우리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어느새 계단이 사라지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오거나 끊어진 다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럴 땐 손끝에 힘을 주어 오르막을 기어서 올라가고, 끊어진 길을 폴짝 뛰어넘어 가면 된다.
인생 설계도는 한 번 작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며, 우리의 삶과 함께 진화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비전과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 설계도가 당신을 어디로 이끌지 모르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여정 자체가 가치 있고 보람찬 경험이 될 것이다. 설계도가 완벽한 수치로 작성되었는지 그렸다 지운 연필 자국이 깊게 남진 않았는지, 결국 완성된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이후의 일이다. 언젠가 먼 훗날 생을 돌아볼 때가 되면 그때 비로소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날에 직접 마주한 나의 도면에서 수치가 조금 어긋났거나 건물의 마감이 조금 울퉁불퉁해도 괜찮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직접 지어 만든 미래에서의 당신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보다 빛날 테니까. 요즘의 사회는 당장 내일의 계획도 지키기 어려울 만큼 버거울 때가 있다. 그렇기에 한 치 앞의 미래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이런저런 일들로 저마다 사정이 있을 테니 인생 설계도는 급하게 그릴 필요가 없다. 인생은 서답형인 만큼 그저 나만의 도면을 완성하기만 되는 것이다. 짬이 날 때마다 조금씩 그려도 좋으니 우선 설계도를 그릴 연필을 들자.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 설계도에 선 하나만 그어도 튼튼한 미래를 벌써 반이나 지은 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