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터 테스트

박진아, 2008

예술과 일상의 경계 속 찾아낸 나의 자긍심
스페이스 이수에서 열리는 《사물들의 힘》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대해 열 명의 작가가 참여해 일상 속 자긍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전시는 소모품으로 만든 가습기, 평생에 걸쳐 입었던 유니폼, 지점토로 빚은 통닭 두 마리, 거대한 카펫, 그물로 짠 항아리, 돌 위에 쌓아 올린 A4용지 등 총 10점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일상의 물건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속에 관람객을 세워 놓는다. 일견 낯설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친숙한 물건이다. 하나같이 나의 삶을 함께해 온 사물들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예술품의 자격을 안고서. 내가 나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될 자격은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야말로 자긍심 아닐까? 열 명의 작가들은 그럴 자격이 있는 물건을 발굴하고 경의를 표함으로써 예술로 삼는다.
유니폼/들:자화상/들: 나의 39년 인생

서도호, 2006

알라딘_인터체인지

임민욱, 2008

A4를 위한 소조

박이소, 2000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서도호 작가의 「유니폼/들:자화상/들: 나의 39년 인생」이다. 정갈하게 걸린 유니폼은 복잡한 설명 없이도 한 사람의 일생을 설명한다. 동시에 그 유니폼에 담긴 역사적 시간도 함께 전시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꿈틀대는 역사를 고스란히 겪어 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내 삶의 파도 같은 시간을 대표하는 옷들을 떠올리고, 지금의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함께 생각해 본다면 자긍심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A4를 위한 소조

박이소, 2000

정체불명의 물건이 늘어서 있다. 어쩐지 익숙한 모양새에 ‘설마?’ 했다면, 그렇다. 작품의 이름 그대로 ‘가습기’다. 「가습기」는 다양한 소모품과 이에 따른 다양한 모습을 하지만 어떤 형태건 본래의 역할에는 충실하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모든 사물은 제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끝에 당당히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미술관에 입성했다. 작가는 조금씩 달라져도 내가 나의 역할을 다한다면, 그리하여 자긍심을 느낀다면 나는 ‘나’라고 말한다.

가습기

이주요, 1998-1999

12개의 조각적 조리법 -#6, #7

김범, 2007-2011

두 점의 통닭이 비슷한 자세로, 그러나 분명히 다르게 누워있다. 총 12점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12개의 조각적 조리법」 중 6번과 7번이 전시되었다. 흔히들 예술은 현실의 모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통닭 조각을 판매한 수익금을 지역 아동센터에 치킨 쿠폰으로 전달했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이다. 남들이 가짜라고 하더라도, 내가 나로서 떳떳하다면 진짜가 아닐 이유가 없다.

  • –어

    정서영, 1996

  • FM 400

    베르트랑 라비에, 1986

옷(衣)과 음식(食)을 보았으면 다음으로는 집(住)이다. 정서영 작가는 ‘노란 장판’ 하나를 뚝 떼어와 벽에 걸어 두었다. 작품 「-어」는 ‘노란 장판’ 위에서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생활이 삶으로 쌓여 나간다. 그리곤 그 장판 위로 우리의 입에서 수십 번 흘러나오는 ‘어’ 그 한마디가 올라가 있다. 작가는 생활 속 가장 친숙한 것들이 예술이 된다면 우리의 삶 역시 예술이 아닐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은근하게 묻는다.

나를 낯설게 보기
《사물들의 힘》은 사물과 예술품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낯설게 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전시다. 내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보아서 감흥이 없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그 감각이 확장되어 일상 역시 새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바뀐 것은 단 하나, 나의 시선뿐이다. 그러니 이제껏 나 자신이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다면 낯설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 나라는 존재를 떠올려보라.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사람을 이루어 온 경험과 나를 겪어 온 사물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스페이스 이수로 발걸음을 옮기자.
《사물들의 힘》
  • 기간
    2025.01.13. - 04.25.
  • 시간
    월~금요일, 13:00 - 18:00
  • 장소
    스페이스 이수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 84 이수화학빌딩)
  • 관람료
    입장료 무료
  • 무료휴관일
    토, 일,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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