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디테일의 힘

K-Pop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지난 6월 20일 공개된 이후, 무려 41개국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고, OST 역시 글로벌 차트를 휩쓸었다. 메인 테마곡 ‘Golden’은 빌보드 글로벌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가상의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 화려한 무대 위에서는 아이돌로, 무대 밖에서는 악귀를 사냥하는 영웅으로 활약한다. 일종의 현대적 ‘무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K-Pop과 K-무속을 결합한 독특한 캐릭터다. 한국에서도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파격적인 설정이기에 더욱 새롭고, 신선하다. 작품에는 좌절을 딛고, 용기를 찾는 순간, 우정과 희생, 그리고 자기 확신으로 나아가는 성장 서사도 담겨 있다.
케데헌이 인기를 얻는 비밀은 무엇일까? 케데헌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K-Pop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한국적 디테일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별자리가 새겨진 사인검, 무당의 신칼 등 전통 무기가 등장하고, 전통 민화 ‘작호도’ 속 까치와 호랑이는 그대로 캐릭터로 살아난다. 도깨비와 물귀신, 저승사자 같은 몬스터도 한국 설화에 근거해 낯설지 않게 풀어냈다. 현실적인 배경도 몰입을 더한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콘서트하는 모습, 낙산공원 성곽길을 걷는 모습, 명동거리의 핫도그 가게와 인생네컷 부스까지 서울의 일상은 그대로 작품 속 무대가 된다. 시청자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서울을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한다.
악귀 아이돌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의 무대는 현실의 K-Pop 팬덤 문화를 비춘다. 콘서트에 가고, 응원봉을 흔들고, 굿즈를 사는 모습은 실제 팬덤 문화를 똑 닮았다. 듀스, 엑소, 트와이스 등 실제 K-Pop 아이돌의 음악이 흐르는 순간, 영화는 더욱 생생하게 현실과 맞닿는다.

K-전통문화로 번진 열기

케데헌의 글로벌 흥행은 곧장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박물관에는 이른 아침부터 ‘오픈런’ 행렬이 늘었고, 박물관 기념품인 ‘뮷즈(Museum+Goods)’는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 심지어 유튜브에는 ‘박물관 오픈런’ 현장을 기록한 영상이 줄줄이 올라오며 또 다른 열기를 더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K-컬쳐의 성지’로 떠오르며 기록적인 관람객 행렬을 이끌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지난 7월 관람객 수는 69만 4천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33만 8천여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올 7월 말 기준 누적 관람객은 341만 명으로, 개관 20년 만에 최다 관람 기록을 경신했다. 박물관 공식 굿즈 매장 ‘뮷즈’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4% 늘어난 115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까치·호랑이를 모티프한 상품이나 반가사유상 굿즈처럼 전통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들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품절 대란’을 불러왔다. 특히 전통 민화 ‘작호도’ 속 까치와 호랑이를 캐릭터화한 ‘까치 호랑이 배지’는 케데헌 속 캐릭터와 닮아 더욱 주목받았다.
흥행의 불길은 온라인으로도 번졌다. 유튜브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오픈런’을 다룬 브이로그와 리뷰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며, 해외 시청자들의 댓글과 반응도 줄을 잇고 있다. 케데헌은 K-Pop과 한국 전통문화가 만나는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낯선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한국스러움’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임을 증명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 모두가 케데헌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까치와 호랑이 배지

케데헌이 쏘아 올린 서울

케데헌 속 무대가 된 서울의 명소들이 이제는 세계인의 ‘성지순례’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 속 장면과 현실의 풍경이 겹쳐지며, 익숙한 공간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N서울타워

이야기의 절정은 서울의 심장, N서울타워에서 펼쳐진다. 빛나는 야경 속에서 벌이는 대규모 전투는 영화의 명장면이자 도시의 새로운 신화를 만든다. 현실의 N서울타워는 전투 대신 평화와 낭만을 품은 전망 명소로, 낮과 밤 모두 다른 매력을 지닌다.

낙산공원 성곽길

루미와 진우가 서로의 마음을 나누던 장면은 이곳 성곽길에서 피어났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해 질 무렵 노을이 번지면 영화 속 로맨틱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밤이 되면 노란 조명이 성곽을 감싸며 드라마틱한 야경을 완성한다.

북촌한옥마을

고즈넉한 한옥 지붕 위에서 루미와 진우가 ‘Free’를 함께 불렀던 순간. 전통과 감성이 어우러진 골목은 영화 속 서정적인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든다. 낮에는 전통의 멋을, 밤에는 낭만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명동거리

서울의 대표 쇼핑 거리 명동에서는 사자 보이즈가 ‘Soda Pop’을 선보였다. 인파로 가득한 거리에서 펼쳐진 무대는 예측할 수 없는 긴장과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활기와 설렘이 뒤섞인 명동은 현실에서도 늘 무대 같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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