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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을 넘어 소통,
그래서 ‘어쩌면 해피엔딩’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결국은 필멸한다. 그런데 정해진 엔딩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려 할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필멸하는 우리에게 소통의 용기가 왜 필요한가를 묻는 작품이다.

Text 정덕현 칼럼니스트 출처 네이버 공연
<어쩌면 해피엔딩>, 단절된 세상에 폐기된 로봇들의 소통
“사랑이란 멈추려 해봐도 바보같이 한 사람만 내내 떠올리게 되는 것” 아마도 많은 이들이 전미도와 정문성이 부르는 ‘사랑이란’이라는 노래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떠올리지 않을까. 영상으로도 공개된 이 장면에서 올리버 역할의 정문성과 클레어 역할의 전미도는 어딘가 삐걱대는 모습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헬퍼봇’이다. 로봇이 ‘사랑이란’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 상황은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뮤지컬이 현시대에 던지는 역설적인 화두처럼 보인다.
인공지능이 갈수록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보다는 스마트폰과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현재가 아닌가. 저마다의 고립된 세상에서 우리는 가끔 인공지능이 사람보다도 더 마음을 잘 알아채고 때론 위로를 주기도 한다고 느낀다. 사랑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일 텐데, 정작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보다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로봇들이 하는 사랑 이야기라니. 이보다 우리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역설이 있을까.
때는 2060년대의 서울 어느 곳.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남성 ‘헬퍼봇’ 올리버는 구형이 되어 버려진 채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 구형인지라 교체 부품 생산이 중단되어 이제 고장 나면 끝나게 될 운명이지만, 그는 일상의 루틴들을 똑같이 반복한다. 화분을 돌보고 정기적으로 재즈 월간지를 받으며, 주인인 제임스가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인 여성 헬퍼봇 클레어가 그의 평범한 일상을 깨고 들어온다. 충전기가 고장 났다며 도움을 요청하다 멈춰버린 것. 올리버는 마지못해 자신의 충전기를 빌려주지만, 최신 헬퍼봇보다 구형인 자신이 훨씬 뛰어난 내구성을 갖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아 클레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사회적 능력이 부족한 초기 헬퍼봇 올리버는 최신 기종인 클레어를 은근히 질투하고, 많은 기능을 갖고 있지만 배터리 소모가 심한 최신 헬퍼봇 클레어는 그런 올리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티격태격하지만 차츰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조금씩 소통하며 마음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클레어를 위해 올리버는 자신의 충전기 어댑터를 개조해 걸쇠를 만들어 주는데, 그건 헬퍼봇으로서 누군가를 돕는 기능적 행위를 넘어, 상대방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충족시켜 주려는 마음의 표현이다.
고립되어 폐기될 운명의 로봇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사랑하게 되는 건 결국 서로 닫고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통’ 으로부터 시작한다. 클레어가 올리버의 집 문을 열지 않았다면, 올리버가 위기에 처한 클레어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또 서로 다른 두 존재들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씩 마음을 맞춰가지 않았다면 이들에게 사랑 같은 ‘기적’이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게다. 그리고 이건 완벽하게 나만의 세계 안에 고립되어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문을 열고 두 존재가 부딪치는 소통의 첫걸음을 내딛지 않고서는 기적은 생기지 않는다.
고립되어 폐기될 운명의 로봇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사랑하게 되는 건
결국 서로 닫고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통’으로부터 시작한다.
소극장 뮤지컬이 세상 바깥으로 나가 마주한 기적들
기적은 또 다른 기적으로 이어지는 걸까. 버려진 로봇들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이 뮤지컬의 박천휴 작가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해왔던 윌 애런슨에게 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작사와 작곡을 더해 뮤지컬을 완성했다. 그 시작은 처음 헬퍼봇들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외딴곳 작은 아파트처럼 소박했다. 작은 소극장에서 조촐하게 올려진 뮤지컬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헬퍼봇들이, 올리버는 주인인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클레어는 반딧불을 찾기 위해,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갔던 것처럼, <어쩌면 해피엔딩>도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2016년 그 소박한 첫발을 디딘 이 뮤지컬은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과 호평에 힘입어 앙코르 공연을 계속 이어갔고, 2020년 애틀랜타 얼라이언스 극장에서 영어로 초연을 가진 후 2024년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평균 90%를 훌쩍 넘기는 높은 객석 점유율과 만장일치에 가까운 좋은 평가를 받은 이 뮤지컬은 놀랍게도 2025년 제78회 토니상 6관왕의 주인공이 되었다. 말 그대로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사랑과 소통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 전 세계 뮤지컬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기적 같은 결과를 낸 것이다.
물론 이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과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게 아니었다. 소품 공급이 지연되어 첫 공연이 한 달간 연기되어 취소된 공연티켓을 환불해 주기도 했다. 프리뷰 공연에서도 티켓 판매 실적은 저조했고, 이 낯선 창작 뮤지컬을 소문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넘어선 건 작품이 가진 진정성의 힘이었다. 그 진심은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마음에 닿았고 찬사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제작자인 제프리 리처즈는 뉴욕타임스에 이 작품을 ‘21세기 44번가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건 이 뮤지컬이 공연된 뉴욕 벨라스코 극장이 과거 폐막 위기를 겪던 연극 ‘올 더 웨이 홈(All the way home)’의 흥행 성공으로 ‘44번가의 기적’이라 불렸던 데서 따온 표현이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공연의 여정이었지만, 그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던 건 세상을 향해 진심을 꺼내 놓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자 했던 소통의 힘이었다.
필멸하기에 소통해야 한다는 역설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을 타고나는 우리들이 누군가와 이토록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려 하는 건 어찌 보면 무의미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필멸하기 때문에 소통하려 한다는 역설일 수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에서는 이것을 기억의 문제로 그려낸다. 제주도까지 찾아갔으나 결국 제임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올리버는 아쉬워하면서도 그가 죽기 전 자신에게 LP를 남겼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건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 기억하고 있었다는 뜻이고 제임스가 자신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제임스와 올리버를 갈라놓았지만 그들은 함께 소통했던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 삶에 있어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은 그래서 그 필멸의 존재들이 저마다 의미를 갖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것은 여행에서 돌아온 올리버와 클레어가 마주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선택을 통해서도 그려진다. 올리버보다 먼저 망가질 걸 알고 있는 클레어는 그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 사랑을 끝내자고 하지만 올리버는 클레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그녀를 사랑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수리를 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게 되자 둘은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그렇게 기억을 지운 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 펼쳐진다. 클레어는 충전기를 빌려달라며 올리버의 집을 찾아오고 올리버는 처음에는 못 들은 척하다가 결국 클레어를 집에 들여 충전하게 한다. 똑같은 일상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올리버는 클레어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우지 않았거나 기억이 되살아났거나. 그래서 새드엔딩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어쩌면’ 해피엔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필멸’이라는 정해진 운명은 새드엔딩일 수 있으나, 행복을 찾아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는 그 아름다운 소통의 몸짓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한 해피엔딩일 수 있으니.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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